01. Give Me Strength
02. Let It Grow
03. Layla
04. Wonderful Tonight
05. Tears In Heaven
06. Change The World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회자명단에는 에릭 클랩튼 이름이 세 번이나 등재되어 있다. 그러니까 비틀스 멤버들이 비틀스 그룹으로 올리고 이후에 각각 개인 아티스트 자격으로 한 번 더 올린 것처럼 (링고 스타만은 비틀스 멤버로만 오름) 에릭 클랩튼은 세 번 오른 것이다 야드버즈의 창단 멤버로, 하드 록의 역사를 열었던 크림의 구성원으로 그리고 솔로 아티스트의 자격으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것은 에릭 클랩튼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서 활동해 온 뮤지션인지 단번에 드러나는 대목이다. 허나 세 번에 걸쳐 이뤄진 항구적 가치와 달리 에릭 클랩튼의 음악사나 인생사는 굴절이 많았다. 세 번에 헌정만큼이나 제1 제2 제3의 전성기로 나눠지는 음악사가 있고 인생사역시 블루스였다
사생아 출신이었던 그를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자존심이 기타라는 것을 깨달았을까? 그에게는 일찍이 기타의 신이란 칭호가 붙여졌지만 우정을 나누며 교감하던 지미 헨드릭스, 듀언 올맨, 스티브 레이 본 같은 곁에 있던 뮤지션들이 한순간 예기치 못한 사고로 사라지는 순간을 매번 목도하고 절친한 친구였던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의 부인과 벌인 삼각관계는 록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로 회자되고 있지만 헤로인을 털어 넣어 죽음을 각오할 만큼이나 열병을 앓아야했고 친구인 조지 해리슨에게도 엄청난 고통을 남겨준 사건이었다
1945년 3월 30일 영국의 리플리에서 태어난 에릭 클랩턴은 16세부터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1963년 10월에 메트로폴리스 블루스 퀘텟(Metroplice Blues Quartet)라는 그룹에 가입하였고, 그후 야드버즈(Yardbirds)로 그룹명이 바뀌면서 영국 하드록 역사의 시초를 이루에 되었다.
그러나 곧 그룹을 떠나 1966년 7월 크림(Cream)을 잭 브루스(베이스), 진저 베이커(드럼)등과 함께 팀을 결성하여 앨범을 발표한 후, 68년 12월에 로열 앨버트홀에서 고별연주회를 끝으로 해산했다. 이 시기에 그는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에 세션으로 참가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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